자연 행성

문명이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땅입니다. 숲과 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죠. 금속 한 조각이 어쩌다 흘러들면 온 마을이 그걸 돌려 가며 썼습니다. 겨울은 추운 철이 아니라 굶는 철이라, 사냥이 시원찮은 해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먼저 제 몫을 줄입니다. 그런 해를 몇 번 넘긴 사람은 젖은 흙 냄새만 맡고도 며칠 전에 여기로 뭐가 지나갔는지 압니다.
정착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떠나온 고향 열여섯 곳이자, 당신의 정착지가 닮아 갈 수 있는 열여섯 가지 사회입니다.
개발 중인 설정이라 내용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의 그림은 전부 컨셉 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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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땅입니다. 숲과 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죠. 금속 한 조각이 어쩌다 흘러들면 온 마을이 그걸 돌려 가며 썼습니다. 겨울은 추운 철이 아니라 굶는 철이라, 사냥이 시원찮은 해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먼저 제 몫을 줄입니다. 그런 해를 몇 번 넘긴 사람은 젖은 흙 냄새만 맡고도 며칠 전에 여기로 뭐가 지나갔는지 압니다.

폐허 행성에서는 돌을 캐지 않고 무너진 집을 파냅니다. 옛 도시가 통째로 주저앉은 자리 위에 사람들이 다시 마을을 올렸고, 지금도 벽을 뚫으면 백 년 전 누군가의 부엌이 나옵니다. 기둥이 성한 구역은 먼저 들어간 무리가 길목을 막고 통행료를 받죠. 그래서 이 행성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주워 쓰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파내면 나오는 물건마다 주인은 이미 백 년 전에 죽었으니까요.

주인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 공장은 아직도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벽에 붙은 당번표대로 설비를 맡고, 맡은 만큼 먹을 것을 받습니다. 당번을 한 번 빠뜨리면 관리 기계가 그날 배급을 깎죠. 옷에 밴 기름 냄새는 아무리 빨아도 빠지지 않아서, 공장 행성 사람은 한 방에 있으면 금방 알아봅니다.

여기서 제일 비싼 물건은 마스크에 끼우는 필터입니다. 맨얼굴로 숨을 쉬면 몇 해를 못 삽니다. 싸움이 붙는 것도 오염 때문이 아니라 필터 값 때문이죠. 값을 못 대는 집은 쓰던 필터를 빨아서 다시 끼웠고, 그 집 아이들이 제일 먼저 폐를 앓았습니다. 독성 행성에서 온 사람은 남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이 얼마나 버틸지 압니다.

본국은 사람들을 내려놓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개척 행성 마을에는 절반만 올라간 건물이 그대로 서 있고, 쓰다 만 자재가 비를 맞으며 쌓여 있습니다. 어른들은 남은 자재를 어느 공사에 먼저 쓸지를 두고 겨울마다 다퉜고, 다툼에 진 집은 지붕 없이 그 겨울을 났습니다. 여기서 자란 사람은 낯선 곳에 도착하면 건물부터 세어 봅니다. 몇 채가 완성이고 몇 채가 아닌지를요.

지표에 나가면 사람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지하 행성의 마을은 전부 땅속이나 얼음 밑에 있고, 공기도 물도 위 구역으로 먼저 갑니다. 아래쪽 굴이 무너지면 위에서는 그걸 파내지 않고 그냥 덮어 버렸습니다. 그 아래에서 평생을 산 사람은 어디에 있든 천장부터 올려다봅니다. 트인 하늘 밑에 처음 섰을 때는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랐다고 하죠.

우주선 선단에는 디딜 땅이 없습니다. 낡은 배 여러 척을 줄로 묶어 놓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살죠. 밭이 없으니 흙을 밟아 본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를 가지려면 배에 자리가 하나 나야 했고, 그래서 누가 태어난 날은 대개 누가 죽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복도에 서 있으면 낮은 진동이 발바닥으로 계속 올라옵니다.

기계 문명에서는 팔다리나 눈을 바꿔 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추운 날이면 바꿔 단 관절에서 작게 소리가 나죠. 좋은 부품은 돈으로 못 삽니다. 순번이 있고, 그 앞쪽은 늘 윗자리 사람들 차지라 차례를 기다리다 죽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손으로 뭘 깎아 본 사람이 드뭅니다. 쓰던 물건이 전부 설비에서 나왔으니까요.

씨앗과 가축에 쓰던 기술을 사람한테도 그대로 쓰는 행성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키와 손힘, 앞으로 견딜 병까지 고릅니다. 잘 자란 아이는 좋은 계통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일찍 다른 일을 맡았죠. 그렇게 자란 사람은 자기 몸에서 어디까지가 타고난 것인지 모릅니다. 누가 몸이 좋다고 칭찬하면 대답이 한 박자 늦어집니다.

정신의 힘은 스승이 제자 옆에 몇 해씩 붙어 앉아 물려줍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스승과 제자들의 집에서 밥을 짓고 옷을 댔습니다. 어느 집 아이에게 힘이 깨어나면 스승들이 데려가 이름을 새로 지어 주었죠. 그러니 여기서는 남 앞에서 딴생각을 하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마음을 읽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병이 돌면 마을 회의가 주술사를 부릅니다. 주술 문명에서는 그게 정해진 절차죠. 주술사가 미지와 거래를 붙이면 값은 누군가 치러야 하고, 그 누군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정합니다. 대가를 미룬 집은 회의 장부에 적혔다가 다음번에 맨 앞으로 불려 나갔습니다. 그 장부에서 자기 집 이름을 찾아본 적 있는 사람은 종이 넘기는 소리를 싫어합니다.

전쟁 행성 아이들은 글을 떼기 전에 총 쥐는 법과 시신 치우는 법부터 배웁니다. 자라면 남녀 없이 전선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고, 같은 해에 올라간 이름들은 몇 해 안에 대부분 전사자 명단으로 옮겨 갑니다. 이기자고 말하는 어른은 없습니다. 다들 이번 달을 넘기는 이야기만 하죠. 살아서 빠져나와도 총을 내려놓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이 행성에는 옛 설비의 속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대가 외워 남긴 말과 순서를 그대로 따라 하면 설비는 한 번 크게 떨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그 순서의 절반은 진짜 공정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 뜻 없는 말인데,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니 통째로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순서를 한 번 바꿔 본 사람은 그 설비 옆에 묻혔습니다.

짝도, 아이도, 일자리도 당이 서류로 정해 내려보냅니다. 사람들은 그 서류를 받아 든 날 상대의 얼굴을 처음 봅니다. 종이 한 장에 도장 두 개, 결혼 준비라고 할 것도 없죠. 짝을 거절한 사람에게는 먼 구역으로 가라는 서류가 한 장 더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는 법부터 배웁니다.

법을 만드는 곳도 병원도 기업입니다. 다치면 기업이 고쳐 주고 그 값을 돈이 아니라 일할 날수로 적어 둡니다. 다 갚기 전에 죽으면 남은 날수는 자식에게 그대로 넘어가죠. 그러다 보니 기업 행성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값을 말하지 않고 그냥 내주는 사람입니다. 이 행성 출신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뒷장을 몇 번씩 넘겨 봅니다.

범죄자 행성에서는 보스가 곧 정부입니다. 구역마다 조직이 하나씩 들어앉아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걷고 재판도 합니다. 자릿세를 제때 낸 가게는 조직이 도둑까지 잡아 줍니다. 자릿세가 밀린 가게를 부수러 오는 것도 같은 조직입니다. 보스가 바뀌면 법도 그날 바뀌어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누가 보스인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처음 보는 얼굴을 만나면 이름보다 어느 구역에서 왔는지를 먼저 묻습니다.